색은 인간의 생활과 뗄래야 뗄 수 없는 물과 공기와 같은 존재다. 그 만큼 중요하다.
색은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가 색에 품고 있는 사회 규범과 금기, 편견 등을 표현하고 전달한다. 그리고 다양한 의미로 우리의 사회·문화적 환경과 태도, 언어와 상상계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림이나 장식물, 건축, 광고는 물론이고 우리가 일상에서 소비하는 제품, 옷, 자동차 등 이 세상 모든 것들의 색이 비밀에 싸인, 불문(不文)의 코드로 지배되고 있다.
‘색의 인문학’은 프랑스를 대표하는 중세사 연구가이자 색의 역사에 정통한 미셸 파스투로의 저서로, 프랑스 내에서 스테디셀러로 자리한 [“Le petit livre des couleurs]의 개정판이다. 프랑스 유명 일간지 [l’Express] 여름 특집 기사들을 모은 것이며 소설가 겸 기자인 도미니크 시모네가 질문하고 미셸 파스투로가 답하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파랑, 빨강, 하양, 초록, 노랑, 검정, 중간색(레인 그레이, 캔디 핑크 등)에 대한 숨겨진 이야기를 좇아가며 여행을 하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 당도해 있을 정도로 재미가 있다.
‘색의 인문학’은 브랜딩, 디자인, 패션, 광고 등 색과 관련된 직업을 가지고 있는 전문가에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1인 미디어를 시대에 살고 있는 일반 시민들에게 더 필요하고 한번쯤 꼭 읽어봐야 할 책이다.

‘색의 인문학은’ 서양 상징사의 대가 미셸 파스투로가 들려주는 색에 관하 다양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다. 색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어떻게 이용되어 오고, 왜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변천되었는지 말해준다.
색은 고정불변한 것이 아니다. 태곳적부터 전해 내려오는 변화무쌍한 역사가 있다. 그 흔적은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어휘에도 남아있다. 프랑스어로 “voir rouge”(붉은 색을 보다-격노하다), “rire jaune”(노란색 웃음을 짓다-쓴웃음을 짓다), “blanc comme neige”(흰 천처럼 하얗다-얼굴이 창백하다), “vert de peur”(공포로 초록색이 되다-공포에 질리다), “bleu de colere”(화가나서 얼굴이 시퍼렇다-몹시 화나다) 등의 표현이 아무 까닥 없이 생겨난 것이 아니다.
불안정성을 상징하는 녹색이 지폐 중의 지폐인 미국 달러에 사용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중세시대에 돈을 상징하는 색은 금색이나 은색이었다. 1792년과 1863년 사이에 제작된 최초의 달러 지폐가 시중에 유통되었을 때 초록색은 이미 도박을, 더 나아가서는 은행이나 재정을 연상시키는 색으로 인식되어 있었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새로운 색이 계속 발견되고 있지만 색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서구 사회가 물려받은 여섯 가지 기본 색 파랑, 빨강, 하양, 초록, 노랑, 검정은 앞으로 수십 년이 지나도 그대로일 것이다. 색조에도 다양한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하지만 색의 상징체계는 별로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저자는 "색이 기술로 좌지우지할 수 없는, 추상적 범주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바야흐로 ‘빨강, 파랑, 검정, 하양 등이 무엇을 의미하느냐’를 물어야 할 때다라고 했다. 왜냐하면 그것들이 우리의 행위와 사유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저자 미셸 파스투로(Michel Pastoureau)는 중세 문장학의 대가이며, 색채 분야에 관한 한 최초의 국제적 전문가다. 1947년 파리에서 태어났고 소르본 대학교와 국립 고문서 학교에서 공부했다. 1968년부터 색의 역사를 학술적 주제로 연구하기 시작하여, 중세의 색에 관한 첫 논문을 1977년에 발표하였다. 국립 도서관 메달 전시관에서 학예관으로 일했으며, 1982년에는 고등 연구 실천원(EPHE) 역사·문헌학 분과의 연구 책임자로 선출되어 이후 28년 동안 색의 역사와 상징, 중세 동물에 대한 강의를 했다. 로잔 대학과 제네바 대학 등 유럽 명문대학의 초빙 교수를 지내며 유럽 사회의 상징과 이미지에 대하여 다양한 세미나를 진행했다. 프랑스 학사원의 객원 회원이며, 프랑스 문장학 및 인장학 협회 회장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초청 강연과 저술 활동을 통해 자신의 학술적 성과를 대중에게 쉽고 흥미롭게 알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 저서로 [색의 비밀](1992), [악마의 무늬, 스트라이프] (1991) 등이 있다. [파랑의 역사] (2000)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으며, [검정의 역사], [초록의 역사], [빨강의 역사], [노랑의 역사] 등을 연이어 발표하면서 색의 역사를 다양한 역사적 사실과 풍부한 인문 사회학적 지식을 곁들여 흥미롭게 소개하고 있다.
대담자 도미니크 시모네(Dominique Simonnet)는 예술, 과학, 역사, 사회 분야의 저명인사들과 나눈 대화를 정리하여 여러 차례 대담집을 낸 저널리스트이다. 2007년까지 프랑스 시사 전문지 [렉스프레스]의 편집장을 역임하였고, 프랑스 과학 기자 협회(AJSPI)의 회장을 맡아 다양한 분야의 융합을 위한 수많은 문화 행사를 기획했다. 현재는 소설가, 라디오와 텔레비전 다큐멘터리 프로듀서, 무용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역자 고봉만은 성균관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마르크 블로크 대학(스트라스부르 2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충북대학교 프랑스언어문화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색채와 상징, 중세 고딕 성당 등에 대한 최신 연구를 번역·소개하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공저서로 [문장과 함께하는 유럽사 산책](2019)이 있고, 역서로 [마르탱 게르의 귀향](2018), [파랑의 역사](2017), [세 가지 이야기](2017), [역사를 위한 변명](2007)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