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제 1호 특허권자는 독립운동에 헌신한 정인호선생(1869.10~1945.1)으로 특허등록 110주년이 되었다.
특허청에 따르면 “일본제도에 의한 한국인 1호 특허가 역설적이게 민족기업을 성장시켜 임시정부에 군자금을 지원하며 독립운동의 숨은 자금원이 됐으며”, “한국인 1호 특허가 나라가 위기에 빠졌을 때 이를 극복하는 불쏘시개 역할을 하였다
한국인 1호 특허권자인 정인호선생은, 1908년 초등대한역사 등 교과서를 저술해 민족교육운동에앞장섰고 일제강점기 대한민국 상해 임시정부에 독립자금을 지원하던 활동으로 징역(5년)형을 선고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 했다.(국가보훈처 독립유공자훈록 )
정인호(1869.10~1945.1) 선생은 경기도 양주출신으로 궁내부 감중관과 청도군수를 지냈고 일제의 침략이 가속화되자 군수직을 사직하고 독립운동에 헌신했다.
1908년 초등대한역사 등 교과서를 저술해 교육을 통한 민족교육운동에 힘쓰는 등 교육자, 저술가, 발명가로 활동하며 민족의식을 고취시켰다.
1909년 8월 19일 통감부 특허국에 특허 제133호로 말총모자 특허를 등록 받으며 한국인 특허1호의 주인공으로 우리 특허사에도 큰 이정표를 남겼다.
일제에 의한 특허제도 이지만 한국인 최초로 특허를 획득했고 일본에도 특허를 출원해 등록 받았다. (당시 우리의 특허제도는 일본에 의해 1908년 한국특허령이 시행되며 도입됐다. 이는 일본의 특허제도를 적용한 것으로 한국 내에서 미국과 일본의 권리보호에 주안점을 둔 제도였다. 경술국치후엔 한국특허령을 폐지하고 일본 특허법을 그대로 운영했다.)
정인호 선생은 한국인 최초의 특허권자로 말총모자, 말총 핸드팩, 말총 토수, 말총 셔츠 등 다양한 말총제품을 제작해 일본, 중국 등에 수출하며 민족기업으로 성장시켰다.
1909년 8월 24일에는 대한매일신보에 특허 말총모자에 관련 광고를 게재하기도 하였다.
1919년 3.1운동을 계기로 대한독립구국단을 결성해 상해임시정부에 군자금을 지원하며 독립운동을 도왔다.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하던 활동으로 5년형을 선고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독립 운동가의 공훈을 인정해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했고, 대전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안장됐다. (출처:국가보훈처 독립유공자훈록, 한국특허제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