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 12월 16일 강원도기념물 제5호로 지정되었다가 2008년 12월 26일 명승 제50호로 변경되었다. 남쪽은 층암절벽으로 막혀 있고 동ㆍ북ㆍ서쪽은 남한강 상류의 지류인 서강(西江)이 곡류하고 있어 배로 강을 건너지 않으면 밖으로 나갈 수 없는 특수지형이며, 현재도 도선을 이용해야만 방문이 가능하다. 또한 이곳은 1457년(세조 3) 세조(世祖)에 의하여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봉된 단종이 유배되었던 곳으로, 그 해 여름 홍수로 서강이 범람하여 처소를 영월 객사인 관풍헌(觀風軒)으로 옮기기까지 머물렀던 곳이다.
청령포라는 지명은 1763년(영조 39년)에 세워진 단종유지비에 영조가 직접 ‘단묘재본부시유지(端廟在本府時遺址)’ 라고 써서 내렸고, 이것을 화강석 비좌 위에 올려진 오석(烏石)으로 된 비신에 새겼다. 비(碑)의 뒷면에 1763년 9월에 원주감영으로 하여금 쓰게 했다는 내용이 새겨져 있고, 지명 청령포라고 썼다. 이로 보아 청령포라는 지명은 유래가 깊은 것으로 보인다. 이 지역은 감입곡류하던 서강이 청령포 부근에서 하천의 측방침식에 의하여 하천의 유로가 변경되어 형성된 지역이다. 이 지역은 과거 서강이 우회하던 방절리 주변의 저지대에 현재는 논농사가 이루어지고 있는 구하도와 미앤더 핵이라 불리는 지형이 잘 보존되어 있어 학술적으로 중요하다. 또한 인근에 석회암 지대에 발달하는 카르스트지형과 구하도 상에 위치한 방절리의 하안단구(河岸段丘) 등이 발달되어 있다.
또한, 이곳은 1457년(세조 3년)세조에 의하여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봉된 단종이 유배되었던 곳으로, 그 해 여름 홍수로 서강이 범람하여 처소를 영월 객사인 관풍헌(觀風軒)으로 옮기기까지 머물렀던 곳이다. 유배 당시 세운 것으로 알려진 금표비(禁標碑)와 그 뒤 영조 때 세운 단묘유적비(端廟遺蹟碑), 2000년 4월 단종문화제 때 세운 단종어가가 있으며, 단종이 서낭당을 만들 듯이 쌓은 것이라 하는 돌탑 등이 있다. 청령포 수림지로 불리는 소나무숲이 울창하고 서강의 물이 맑아 예로부터 영월팔경의 하나로 손꼽히는 명소로서 피서객과 낚시꾼이 많이 찾아온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청령포 [Cheongnyeongpo]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