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대한민국 폰트 유통의 왜곡
[기고] 대한민국 폰트 유통의 왜곡
  • 정석원 (사)한국폰트협회 협회장
  • 승인 2025.07.08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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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대한민국 폰트 산업은 제자리걸음인가

대한민국 폰트 유통의 왜곡

정석원 (사)한국폰트협회 협회장

대한민국의 폰트 산업은 세계적인 한글 문화와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장 규모나 산업 생태계 측면에서 매우 뒤처져 있다.

2024년 현재 우리나라의 폰트 시장 규모는 약 400억 원 수준이다. 반면 일본은 9,000억 원에 이른다. 양국의 1인당 GDP가 각각 3만6천 달러 수준으로 비슷한 상황임을 감안하면, 이 격차는 단순한 수요 차원이 아니라 산업 구조의 문제임을 알 수 있다.

도대체 무엇이 대한민국 폰트 산업의 성장을 가로막고 있는가? 지금의 유통 구조는 과연 합리적인가? 폰트를 핵심 자산으로 포함하는 ‘한글 산업’은 과연 비전을 가질 수 있는가?

도표/수치 요약 (2024 기준)
도표/수치 요약 (2024 기준)

번들 계약이 만든 ‘선불 구조’

가장 대표적인 유통 왜곡 사례는 마이크로소프트(MS) 윈도우에 번들된 한글 폰트다. 초기 국내 폰트 기업들은 일괄 구매 방식으로 사용권을 판매했고, 이는 곧 지속 수익이 없는 구조를 고착화시켰다. 반면 일본은 폰트 개발비 외에도 MS로부터 매년 로열티를 받으며 기술 자산의 가치를 지속적으로 환산받고 있다.

이와 유사하게 국내 오피스 프로그램 ‘한글’ 및 ‘한컴오피스’도 여러 폰트들을 번들 형태로 일괄 계약했고, 이후 사용에 대해 정기적인 수익을 창출하는 구조는 만들지 못했다. 이는 국내 폰트 기업 스스로 시장 질서를 파괴한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PDF 확산과 인쇄 시장의 몰락

2000년대 이후 어도비 PDF 포맷이 확산되며 외장형 폰트 수요가 급감했다. 내장된 폰트만으로 인쇄가 가능해지면서, 기존 인쇄·출판 업계에서의 폰트 사용이 사라진 것이다. 그러나 국내 폰트 업계는 이에 대한 기술적·법적 대응에 소극적이었다. 결국 폰트 기반의 출판·디자인 수익은 큰 타격을 입었다.

공공과 대기업의 ‘시장 파괴’

또 다른 문제는 공공기관과 대기업이다. 정부와 지자체는 ‘공공재’라는 명분 아래 폰트를 무상 배포하고 있다. 민간 기업이든, 개인이든 사용에 제한이 없다. 이는 민간 폰트 기업들의 생존 기반을 흔드는 정책 실패다. 공공이 시장 질서를 무너뜨리고 있는 셈이다.

대기업 또한 홍보 목적의 무료 배포를 경쟁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기업 이미지 제고에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결과적으로 산업 전반의 수익 모델을 붕괴시키는 행위다. 사회적 책임을 ‘무상 공급’으로 이행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 방식인지 재고할 필요가 있다.

해결을 위한 다섯 가지 제언

이제는 이 왜곡된 구조를 바로잡기 위한 실질적 해법이 필요하다.

첫째, 국제사례 분석이 선행되어야 한다. 미국, 일본, 유럽의 유통 정책과 수익 모델을 면밀히 분석하고 이를 한국 실정에 맞게 조정해야 한다.

둘째, 업계가 공통으로 활용할 수 있는 표준화된 라이선스 계약서를 마련해야 한다. 지금과 같은 불투명하고 각자도생식 계약은 산업 기반을 약화시킬 뿐이다.

셋째, 정부 및 공공기관과의 협의체 구성이 시급하다. 단순 배포 중심의 관행을 바꾸고, 산업 보호 관점의 정책 수정이 필요하다.

넷째, 소비자 인식 개선 전략도 중요하다. 폰트는 단순한 ‘글씨’가 아닌 예술성과 기술이 결합된 지적 자산이다. 이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높이는 노력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폰트산업 보호 및 육성법」 제정이 요구된다. 폰트를 문화 산업의 하나로 인정하고, 정책적·법적 지원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대한민국 폰트 산업은 기술력 부족이 아닌 전략과 제도의 부재로 위기에 놓여 있다. 지속 가능한 수익 모델, 유통 구조 혁신, 공공의 역할 재정립 없이는 ‘한글 산업’이라는 말조차 공허하게 들릴 수 있다. 이제는 예술, 산업, 정책이 함께 움직여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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