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이 성장할수록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한다. 사업이 확장되면서 자회사와 신규 서비스, 서브 브랜드가 늘어나면 브랜드의 시각적 정체성이 분산되는 이른바 '시각적 파편화(Visual Fragmentation)' 현상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부서마다 다른 로고와 서체, 컬러를 사용하고 서비스별 디자인 기준이 제각각 운영되면 소비자는 서로 다른 브랜드로 인식하게 된다. 결국 하나의 기업이 오랜 시간 축적한 브랜드 자산이 약화되고, 시장에서의 인지도와 신뢰도 역시 분산될 수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글로벌 기업들은 수십 개의 브랜드와 서비스를 하나의 체계 안에서 관리하는 '마스터 비주얼 시스템(Master Visual System)' 구축에 적극 투자하고 있다. 그 중심에는 기업만의 전용 서체와 컬러 시스템이 자리하고 있다.
■ 아마존®(Amazon®), '오렌지 화살표와 전용 서체로 수십 개 서비스를 연결하다'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인 아마존®은 전자상거래뿐 아니라 AWS, Prime Video, Kindle 등 다양한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사업 영역은 서로 다르지만 소비자는 이들 서비스를 이용하는 순간 자연스럽게 "아마존®의 서비스"라는 인식을 갖게 된다. 그 배경에는 일관된 디자인 시스템이 있다.
아마존®은 브랜드를 대표하는 오렌지 컬러의 화살표(Symbol)와 자체 개발한 전용 서체 Amazon Ember를 다양한 서비스에 공통적으로 적용했다. 서비스의 성격은 달라도 동일한 시각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브랜드 경험을 하나로 연결한 것이다.
이러한 디자인 체계는 소비자가 서비스를 이용하는 짧은 순간에도 브랜드에 대한 신뢰와 연속성을 자연스럽게 형성하도록 돕는다.
■ 월마트®, 20년 만의 디자인 정비로 글로벌 브랜드 경쟁력 강화
글로벌 유통기업 월마트® 역시 디자인 시스템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하나로 연결되는 옴니채널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 월마트®는 전 세계 오프라인 매장 간판은 물론 모바일 앱, 물류 차량, 공급망 문서 등 모든 고객 접점의 디자인을 하나의 기준으로 통합했다.
브랜드를 상징하는 'Spark' 로고를 정교하게 정비하고 일관된 서체 시스템을 적용하면서, 수만 개의 접점을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디자인 인프라를 구축했다.
이는 단순한 리뉴얼이 아니라 브랜드 관리 비용을 줄이고 글로벌 시장에서 동일한 브랜드 경험을 제공하기 위한 전략적 투자로 평가된다.
■ 유행을 이기는 디자인 시스템은 디자인 경영의 본질이다
글로벌 기업들에게 디자인 시스템은 단순히 보기 좋은 시각 요소를 만드는 작업이 아니다.
기업이 성장하고 조직이 확대되더라도 브랜드의 정체성을 흔들림 없이 유지하고, 다양한 사업과 서비스를 하나의 브랜드 아래에서 일관되게 운영하기 위한 핵심 경영 인프라다.
전용 서체와 컬러, 아이콘, 레이아웃 등으로 구성된 마스터 비주얼 시스템은 시간이 지나도 브랜드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기준이 되며, 조직 구성원 모두가 동일한 브랜드 언어를 사용할 수 있도록 돕는다.
브랜딩 전문회사 쉐어멜론의 김용재 대표는 "브랜딩의 목적은 유행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내부 구성원 모두가 공감하고 실무에서 활용할 수 있는 견고한 비주얼 체계를 구축하는 데 있다"며 "브랜드가 성장할수록 디자인 시스템은 선택이 아니라 경쟁력을 결정하는 핵심 자산이 된다"고 말했다.
디지털 플랫폼과 신규 서비스가 빠르게 늘어나는 시대일수록 기업의 경쟁력은 더 많은 브랜드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브랜드를 하나의 정체성으로 연결하는 능력에서 나온다. 결국 마스터 비주얼 시스템은 디자인을 넘어 브랜드 경영의 지속가능성을 결정하는 전략적 자산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