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빗자루’를 섬겨라
동시지방선거의 뜨거웠던 불꽃이 마침내 꺼졌다. 민심이 써 내려간 성적표는 이미 정치권의 손에 들려 있다. 선거 과정에서 분출되었던 치열한 대립과 갈등을 뒤로하고, 그 결과를 겸허하게 수용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책무이자 성숙한 정치로 나아가는 출발점이다. 그러나 선거가 끝난 지금, 정치권이 보여주고 있는 모습은 승자와 패자를 막론하고 우리에게 매우 깊은 성찰을 요구하고 있다. 과연 지금의 정치는 시민의 삶을 책임질 만큼 '실속'이 있는가.
냉정하게 진단하자면, 현재 정치권은 여야를 불문하고 심각한 ‘무실속’의 상태에 빠져 있다. 선거철만 되면 지역 발전을 외치며 거창한 구호와 화려한 수사를 남발하지만, 정작 시민의 삶을 진정으로 변화시키는 구체적인 전략과 진정성은 보이지 않는다. 중앙 정치의 정쟁과 진영 논리를 그대로 지역에 들여와 편을 가르고 대립할 뿐, 지역의 미래를 지탱할 뚜렷한 비전도 부재하다. 겉은 요란하지만 속은 텅 비어 있는 이른바 ‘무실속 정치’, 이것이 지금 여야 정치권 모두가 마주한 뼈아픈 자화상이다.
정치에서 실속을 차린다는 것은 자당의 권력을 확장하거나 정적을 이기는 것이 아니다. 지역 사회의 해묵은 과제를 해결하고 주민의 삶의 질을 실질적으로 높이는 실천력을 의미한다. 정치권이 과거의 타성에서 벗어나 진짜 실속을 차리고 시민의 신뢰를 회복하려면, 이제 정치의 체질과 풍토를 완전히 바꾸어야 한다. 그리고 그 혁신의 방향은 두 가지 부류의 사람들을 철저히 받들고 섬기는 것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첫째, 지역의 ‘두뇌’를 받들어야 한다. 정치는 감정의 호소나 맹목적인 진영 논리로 작동하는 무대가 아니다. 철저한 데이터와 치밀한 전략, 그리고 실행 가능한 정책으로 역량을 증명하는 장이다. 지역의 도약을 이끌고 도시의 내실화, 정주 여건 개선 등 산적한 숙원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진짜 전문가, 즉 ‘두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언제까지 중앙당의 처분만 바라보거나 정쟁에만 몰두하며 정치를 할 것인가. 지혜롭고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가진 지역의 인재들을 과감히 전면에 세우고, 그들의 전문 지식을 정책에 적극적으로 녹여내야 한다. 정책의 깊이가 곧 지역 정치의 실력이다.
둘째, ‘빗자루’를 섬겨야 한다. 이는 가장 낮은 곳에서 묵묵히 땀 흘리는 평범한 이웃들을 하늘처럼 섬기라는 뜻이다. 매일 아침 거리의 어둠을 걷어내는 청소 노동자, 새벽 공기를 마시며 가게 문을 여는 자영업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지역 사회의 톱니바퀴를 돌리는 평범한 시민들의 삶을 귀하게 여겨야 한다. 정치가 화려한 연단 위에서 마이크를 잡을 때만 존재하는 것처럼 행동할 때 민심은 차갑게 돌아선다. 정치권은 스스로 낮은 곳으로 내려가 주민들의 애환을 어루만지고 눈물을 닦아주는 ‘정치적 빗자루’가 되어야 한다. 민생의 현장을 청소하는 마음으로 시민의 불편을 정돈하는 것이 정치의 본령이다.
선거는 끝났지만 민심의 시험은 멈추지 않는다. 시민들은 이미 다음 시험지를 준비하며 정치권의 일거수일투족을 매서운 눈으로 지켜보고 있다. 만약 정치권이 여전히 당리당략에만 취해 실속 없는 정쟁만 이어간다면, 다음 심판은 여야 모두에게 상상 이상으로 혹독할 것이다.
지혜로운 두뇌를 모셔와 정책의 전문성을 더하고, 빗자루를 든 이들의 삶을 섬겨 정치의 온도를 높여야 한다. 중앙의 바람에 흔들리는 대리 정치가 아니라, 지역의 땅에 단단히 뿌리박힌 실속 있는 정치를 보여주어야 한다. 그것만이 지금의 불신을 극복하고 지역 정치가 시민의 신뢰를 다시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