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문명적 위기의 시대, 원주에서 ‘동학의 후예들’이 밝히는 ESG의 등불

2026-05-26     사단법인 동학인시천연구원 사무총장 박현식
(사)동학인시천연구원

오늘날 지구촌이 직면한 현실은 위태롭기 그지없다. 전 세계적인 기후변화는 생태계의 파괴를 넘어 인류의 생존을 압박하고 있으며, 무한 경쟁과 각자도생의 팽배는 공동체의 해체를 가속화하고 있다. 이에 따라 글로벌 사회는 지속가능한 발전(SDGs)을 위한 필수 생존 전략으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실천운동을 부르짖고 있다. 그러나 서구발 담론인 ESG가 단순한 규제나 평가 지표에 머물며 한계를 보일 때, 우리는 이미 160여 년 전 이 땅에서 시작된 동학(東學)의 생명 철학에서 그 완벽한 해답을 발견하게 된다. 특히 해월 최시형 선생의 피체지이자 생명사상의 본향인 강원도 원주는, 동학의 이념을 현대적 사회 실천운동으로 승화시키는 거대한 역사의 맥박이 치고 있는 곳이다.

강원도 원주는 한국 동학 역사에서 가장 가슴 아프면서도 거룩한 장소성을 지닌다. 양력 1860년 5월 25일 수운 최제우 선생이 창도한 동학은 모든 인간의 존엄성과 평등을 선언한 우리 고유의 혁신적 철학이었다. 수운의 뜻을 이어받아 평생을 고비원주(高飛遠走)하며 동학을 전파한 해월 최시형 선생은 원주, 인제, 정선, 고성 등 강원도 전역을 무대로 국민들에게 억압에 맞설 원동력을 심어주었다. 양력 1898년 5월 24일 바로 이곳 원주에서 피체되어 끝내 좌도난정(左道亂政)의 죄목으로 순국하셨지만, 해월이 남긴 ‘사인여천(事人如天)’과 하늘·사람·만물을 모두 공경하라는 ‘삼경(三敬)’ 사상은 현대 ESG가 지향하는 가치와 정확히 맞닿아 있다.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인간과 유기적으로 연결된 하나로 여긴 생태적 세계관(E)이자, 인간 존엄과 평등을 바탕으로 한 사회적 연대(S)이며, 공생의 도덕성을 강조한 상생(G)의 정신이기 때문이다.

원주가 위대한 이유는 해월의 이 생명 철학이 과거의 역사에 박제되지 않고, 현대까지 끊임없이 맥을 이어왔다는 점에 있다. 20세기 후반, 원주에서는 동학의 핵심 철학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생명·협동조합 운동’의 꽃을 피운 무위당 장일순 선생이 등장했다. 장일순 선생은 동학의 민본 사상과 생명 사상을 바탕으로, 자연과 인간이 함께 사는 구체적인 사회 실천의 길을 열었다. 그리고 그 위대한 정신적 자산은 21세기인 오늘날, 사단법인 동학인시천연구원의 박현식 박사 같은 현대적 실천가들에게로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다. 이들은 종교가 아닌 철학을 바탕으로 수운 최제우, 해월 최시형, 구암 김연국, 해심 김덕경, 정암 임영섭, 중암 박현식의 철학적 동학 정통성과 원주지역의 장일순, 김지하로 이어져 내려온 원주의 사상적 맥락을 온전히 계승하며, 동학을 단순한 학문이 아닌 기후변화와 지구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강력한 ‘현대적 사회 실천운동’으로 전개해 나가고 있다.

글로벌 ESG 운동이 진정한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려면, 제도적 강제를 넘어 개인의 도덕적 자각과 주체적인 연대가 필수적이다. 그런 의미에서 원주의 동학 후예들이 펼치고 있는 실천운동은 전 세계에 던지는 엄숙한 경종이다. 사람을 하늘처럼 섬기고, 밥 한 그릇에서 온 우주의 생명을 보았던 동학의 서사가 오늘날 기후 위기와 사회적 불평등을 해결할 가장 강력한 사상적 기반이 되기 때문이다.

전 세계가 지속가능한 미래를 찾기 위해 방황하는 지금, 우리는 원주를 주목해야 한다. 수운이 씨앗을 뿌리고, 해월이 목숨 바쳐 지켰으며, 무위당이 꽃피우고, 오늘의 실천가들이 이어가는 원주의 동학 정신이야말로 지구촌 문명 위기를 돌파할 시대의 나침반이다. 각자도생의 차가운 현실을 깨고, 우리 안의 '하늘'을 회복하여 자연과 공존하는 생명의 길을 여는 것. 원주에서 시작된 이 거대한 실천의 물결이 국내외적 혼란을 바로잡고 인류 미래의 생태적 대안이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