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사람이 하늘인 세상’, 수운 최제우의 철학이 오늘 우리에게 묻는 것
내일은 동학의 창시자, 수운(水雲) 최제우 대선생님께서 대구 장대에서 순도하신 날이다. 1864년 4월 15일(음력 3월 10일), 서른아홉의 젊은 사상가는 ‘좌도난정(左道亂正)’이라는 누명을 쓰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러나 그가 남긴 ‘동학(東學)’은 결코 죽지 않았다. 162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지금, 우리는 동학을 박물관의 유물이나 박제된 종교적 교리로만 대하고 있지는 않은가.
동학은 종교이기 이전에, 우리 민족이 수천 년간 이어온 경천애인(敬天愛人)의 정신을 현대적으로 집대성한 고유의 ‘철학’이자 ‘인문적 자산’이다. 서구의 근대 철학이 이성과 물질에 천착할 때, 수운은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파격적인 선언으로 인간 존엄의 극치를 설파했다. 이제 우리는 동학을 종교적 외피에서 벗겨내어, 삭막한 현대 사회를 치유할 실천적 철학으로 다시 세워야 한다.
동학 철학의 출발점은 ‘내 안에 하늘님을 모시고 있다’는 ‘시천주(侍天主)’ 사상에 있다. 이는 단순히 신앙적 대상을 상정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 한 사람 한 사람이 우주의 근원적 생명력과 신성을 내재한 고귀한 존재라는 철학적 자각이다.
당시 조선은 신분제가 공고했던 봉건 사회였다. 양반과 노비, 남성과 여성이 엄격히 차별받던 시대에 "누구나 내면에 하늘을 품고 있다"는 가르침은 가히 천지를 뒤흔드는 혁명이었다. 수운의 뒤를 이은 해월 최시형 선생이 "어린아이도 하늘이니 때리지 말라"고 했던 실천적 가르침은 바로 이 철학적 토대 위에서 피어난 것이다.
나아가 ‘인시천(人是天)’은 인간이 곧 하늘이라는 평등의 극치에 도달한다. 이는 서구적 의미의 개인주의적 인권과는 차원이 다르다. 타인을 대할 때 내 안의 하늘이 상대방 안의 하늘을 마주하는 것과 같다는 ‘사인여천(事人如天)’의 태도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동학은 나를 귀하게 여기는 만큼 타인을 지극히 섬겨야 한다는 ‘상생의 철학’을 이미 19세기에 완성했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물질적 풍요 속에 ‘인간 소외’라는 깊은 질병을 앓고 있다. 자본의 논리가 인간의 가치를 앞지르고, 혐오와 갈등이 공동체를 해체하고 있다. '각자도생'의 시대라고 불리는 지금, 우리가 다시금 수운의 가르침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인시천(人是天, 사람이 곧 하늘)’의 사상은 현대 사회의 병폐를 치료할 유일한 해독제다. 사람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하고, 직업이나 재산, 성별로 사람을 등급 매기지 않는 세상. 그것이 바로 동학이 꿈꿨던 ‘다시 개벽’의 세상이다.
우리가 동학을 지켜야 할 고유 유산으로 꼽는 까닭은 그것이 외래 사상에 기대지 않고 우리 고유의 'K-철학’으로서 세계에 내놓을 만한 보편성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에 대한 지극한 예의와 생명에 대한 경외심을 담은 이 철학은 기후 위기와 AI 시대에 인간의 정체성을 고민하는 인류에게 거대한 이정표가 될 수 있다.
동학은 상아탑에 갇힌 관념적 철학이 아니었다. 도탄에 빠진 민중을 구하고, 외세의 침략으로부터 나라를 지키려는 ‘보국안민(輔國安民)’의 실천적 기치였다. 수운 선생의 순도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그의 정신은 동학농민혁명의 횃불로 타올랐고, 이후 독립운동의 정신적 지주가 되었으며, 현대 민주주의의 뿌리가 되었다.
철학은 삶으로 증명될 때 비로소 가치를 지닌다. 우리는 내일 하루만 수운 선생을 기리는 것에 그쳐선 안 된다. 일상의 순간순간마다 내 곁의 사람을 하늘처럼 대하고 있는지 스스로 물어야 한다. 무례함이 능력이 되고, 이기심이 지혜로 둔갑하는 세태 속에서 ‘동학적 삶’을 사는 것이야말로 대신사님의 순도 정신을 가장 올바르게 계승하는 길이다.
수운 최제우 대신사께서 순도하신 지 어느덧 162주기다. 그가 꿈꿨던 세상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여전히 누군가는 차별받고, 누군가는 인간다운 권리를 박탈당한다. 그러나 우리 가슴 속에 ‘인시천’의 불씨가 살아있는 한, 개벽의 꿈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동학은 이제 종교라는 좁은 울타리를 넘어, 우리 민족의 자긍심이자 인류를 구원할 생명 철학으로 거듭나야 한다. 대선생님의 순도일을 맞아, 우리 안에 잠든 ‘하늘’을 깨우자. 나를 귀하게 여기고 타인을 섬기며, 정의로운 공동체를 향해 나아가는 동학의 길. 그 길이야말로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가 반드시 지켜야 할 가장 고결한 유산이다.
선생님이 남기신 “한울님 모셔라(侍天主)”라는 짧고도 강렬한 화두를 다시금 되새기며, 그분이 목숨 바쳐 지키고자 했던 인간 존엄의 가치를 오늘 우리 삶의 현장에 다시 꽃피울 것을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