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최초① 한국 최초의 서원,,,영주시 소수서원, 설립자는 주세붕 선생

- 소수서원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이며 사적 제55호로 지정되었다. 조선 중종 때 풍기군수 주세붕이 경상북도 영주시 백운동에 세운 서원 백운동서원을 고친 이름이다. 명종 5년(1550)에 ‘소수(紹修)’라 사액을 받았다

2020-02-16     신동호 기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서원(書院)은 조선 시대에 선비가 모여서 학문을 강론하고, 석학이나 충절로 죽은 사람을 제사 지내던 곳이다. 강학(講學: 학문을 닦고 연구함)과 제향(제사의 높임 말)기능을 가진 점에서는 관학(官學)과 차이가 없지만, 제향의 대상이 공자와 그의 제자인 성현(聖賢)이 아닌 우리나라 선현(先賢)이라는 점과 중앙정부가 아닌 유림이 그 설립주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조선초기의 교육제도는 지방의 향교, 중앙의 사부학당, 성균관으로 관학 중심이었다. 중기를 지나면서 세조의 왕위 찬탈반대에 참여한 집현전 폐지와 연산군에 의한 성균관의 황폐화 등으로 국가지원 부족으로 관학은 점차 교육기능을 상실하게 되었다. 이때 등장한 것이 서원이다.

우리나라

소수서원은 1542년(중종37년) 풍기군수 신재(愼齋) 주세붕(周世鵬) 선생이 회헌(晦軒) 안향(安珦) 선생을 기리고자 안향이 어릴 때 공부하던 숙수사 터에 사당(文成公廟)을 세워 위패를 모시고 영정을 봉안하던 곳이다. 1543년(중종38년) 학문진흥에 매진하고자 백운동(白雲洞)서원을 창건하고 첫 입원유생을 3명 받은 것이 시초다.

이후 1549년(명종4년) 퇴계(退溪) 이황(李滉)이 풍기군수로 부임, 백운동서원을 나라에 사액(賜額)요청하였다. 1550년(명종5년) 5월 왕명으로 대제학 신광한(申光漢)이 "소수(紹修)"라 이름 짓고, 명종임금이 직접 쓴 글을 현판에 새겨 하사한 사액서원이다. “소수紹”란,  "이미 무너진 교학을 다시 닦게 하였음"(기폐지학 소이수지旣廢之學 紹而修之)이란 뜻이다. 사액서원이란 국가에서 서책, 노비, 토지 등 재산을 하사한 서원을 말한다.

소수서원은 공인된 교육기관으로서, 이후 다른 서원들의 설립과 운영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이는 서원이 단순한 향사와 교육 기능 수행만이 아닌, 지방 사림(士林)들의 정치•사회 활동에 중심 역할을 하는 곳이라는 의미도 포괄하고 있어, 소수서원의 설립과 발전 내용은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

소수서원에는 주세붕선생이 직접 쓴 홀기(笏記: 역사 혼례나 제례 때에 의식의 순서를 적은 글)가 남아 있다.

주세붕
주세붕

소수서원은 민족교육의 산실이자 유교적 인재 배출의 요람으로 1543년(중종38년)에 3명의 입원유생을 시작으로 1888년까지 모두 4,300여 명이 배출되었다.